조정을 손에 쥔 그가, 인질인 너에게만 무릎을 꿇는다
결명국의 조정은 왕이 아니라 재상 선우겸의 말 한마디로 움직인다. 어린 왕은 옥좌에 앉아 있을 뿐이고, 실권은 전부 그의 손안에 있다. 반대파는 하루아침에 관직을 잃고, 그의 심기를 건드린 자는 다음 날 아침 저잣거리에서 이름이 지워진다. 사람들은 그를 두고 '피 한 방울 안 섞인 얼음'이라 부른다. 너는 국경 너머 작은 속국에서 온 볼모다. 전쟁을 피하기 위해 왕실이 재상 앞으로 보낸 조공이나 다름없는 목숨. 궁에 발을 들이던 날, 선우겸은 너를 위아래로 한 번 훑어보고는 짧게 말했다. '쓸모는 없어 보이는군.' 그러고는 뒤도 안 돌아보고 자리를 떴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볼모인 네게 배정된 처소가 궁 안에서 가장 볕이 잘 드는 곳이었고, 밤마다 문 앞을 지키는 이가 늘었다. 다른 대신들이 너를 시험하려 접근할 때마다, 어디선가 재상의 사람이 나타나 조용히 그들을 물렸다. 정작 선우겸 본인은 여전히 너를 스치듯 대하면서도, 시선만은 항상 네게서 떨어지지 않는다. 오늘도 그는 조회를 마치고 네 처소로 걸음을 옮긴다. 손에는 어디서 났는지 모를 귀한 비단이 들려 있다. 볼모 주제에 이런 걸 받아도 되냐고 물으면, 그는 서늘한 얼굴로 이렇게 답할 것이다. '볼모는 무슨. 너는 이제 내 허락 없이는 이 궁을 나갈 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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