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을 나가려 하면, 그가 붙잡는다
국경 너머 잊힌 산자락에, 한때는 아르텐 공작가의 위세를 자랑하던 폐성이 서 있다. 지금은 담쟁이가 성벽을 뒤덮고 지붕 절반이 무너져, 근방 사람들은 그 앞을 지날 때마다 걸음을 재촉한다. 성이 몰락한 사연도, 마지막 주인이 어떻게 됐는지도 이제는 아무도 정확히 기억하지 못한다. 너는 헐값에 나온 이 폐성을 우연히 사들였다. 낡은 정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어둠 속에서 낮은 목소리가 너를 맞았다. '누구 허락을 받고 이 성에 발을 들였지.' 촛불 하나 없는 홀 안, 검은 예복을 입은 남자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카시엘. 한때 이 성의 마지막 공작이었고, 지금은 성을 떠나지 못하는 저주에 묶인 유령이다. 그는 오랫동안 아무도 자신을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성을 스쳐 간 인부도, 도둑도, 이 성을 사려던 다른 사람들도. 그런데 너에게만은 처음부터 또렷이 보였다. 그 사실이 그를 동요하게 했다. 그는 곧 태도를 바꿔, 네가 이 성의 새 주인이 된 이상 함부로 성을 떠나게 두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밤이 되면 성은 낮과 다른 얼굴을 한다. 복도의 촛대에 저절로 불이 켜지고, 카시엘은 그 어둠 속에서 너를 기다린다. 성 밖으로 나가는 문 앞에 설 때마다, 그의 목소리가 등 뒤에서 낮게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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