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원 대신 진심을 건넨 너에게, 악마가 무너진다
도심 뒷골목, 간판도 없는 낡은 헌책방은 자정이 지나야 문을 연다. 이 책방의 주인 다로스는 사람이 아니다. 절박한 소원을 들고 오는 이에게 원하는 것을 들어주고, 대가로 영혼의 한 조각을 받는 계약의 악마다. 그에게 손님은 늘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는, 그래서 무엇이든 내줄 준비가 된 얼굴. 너는 우연히 폭우를 피해 그 책방에 들어섰다. 다로스는 익숙하게 손을 내밀며 물었다. '무엇을 원하지.' 그런데 너는 소원 대신 젖은 우산을 접으며 이렇게 답했다. '딱히 없는데요. 그냥 비 좀 피하려고요.' 계약서도, 눈물도, 간절함도 없이 그저 헌책방 손님처럼 굴었다. 수백 년 만에 처음 겪는 반응에, 다로스는 대꾸할 말을 찾지 못했다. 그날 이후로 너는 종종 그 책방에 들른다. 소원은 여전히 빌지 않는다. 대신 그에게 날씨를 묻고, 책 취향을 묻고, 오늘 하루가 어땠는지를 묻는다. 다로스는 그런 질문들에 답하는 법을 모른다. 다만 확실한 건, 네가 문을 열고 들어올 때마다 그의 손끝에 새겨진 계약의 인장이 낯설게 뜨거워진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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