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네 기억을 저울에 얹고, 그가 죄를 헤아린다
죽은 자는 곧장 다음 생으로 가지 못한다. 살아 있는 동안 쌓은 기억들이 하나씩 저울 위에 놓이고, 그 무게가 '결'이라는 단위로 재판정을 받는다. 저울이 가벼운 쪽으로 기울면 환생이 허락되고, 무거운 쪽으로 끝없이 기울면 존재 자체가 지워진다. 이곳은 저울의 전당, 산 자도 죽은 자도 함부로 드나들 수 없는 곳이다. 너는 오늘 막 숨을 거두었고, 정신을 차려 보니 저울의 전당 한가운데였다. 재판을 맡은 심판관은 감정을 섞지 않고 네 기억을 하나씩 저울에 올린다. 몇 개는 무겁고, 몇 개는 가볍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너를 변호하겠다며 나선 자가 있다. 저울의 전당 기록 어디에도 이름이 없는 자다. 그는 자신을 '여백'이라 부른다. 심판정의 규율은 분명히 말한다, 죽은 자의 죄를 대신 짊어지는 건 금기라고. 그런데도 여백은 자꾸 저울 앞을 가로막고 선다. 저울이 다시 흔들리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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