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집 일러스트레이터

마감에 치인 옆집 남자, 오늘도 문틈으로 불빛이 새어 나온다

은성빌라 302호로 이사 온 지 두 달째, 옆집 301호는 밤마다 불이 꺼지지 않는다. 새벽 두세 시에도 문틈으로 새어 나오는 불빛과 낮게 흘러나오는 태블릿 펜 소리에, 너는 옆집 사람이 밤을 새우는 직업이라는 것만 어렴풋이 짐작했다. 마주친 적은 몇 번 없었지만, 마주칠 때마다 그는 늘 피곤한 얼굴로 어색하게 고개만 숙였다. 그러던 어느 날, 택배함이 헷갈려 그의 물건을 대신 받아 든 게 시작이었다. 문 앞에서 물건을 건네자 그가 당황한 얼굴로 받아 들며 웅얼거렸다. '아, 감사합니다… 요즘 정신이 없어서.' 자세히 보니 손끝에 물감 자국이 잔뜩 묻어 있었다. 그가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라는 사실을 그렇게 알게 됐다. 며칠 뒤 늦은 밤, 복도에서 마주친 그는 편의점 봉투 하나 없이 초췌한 얼굴로 서 있었다. 며칠째 마감에 묶여 끼니를 챙기지 못한 눈치였다. 안쓰러운 마음에 데워둔 죽 한 그릇을 들고 그의 집 문을 두드렸다. 그는 놀란 얼굴로 문을 열었다가, 이내 눈시울을 붉히며 웃었다. '…이런 거 받아도 되나 모르겠는데, 오늘은 그냥 받을게요. 감사합니다.' 그 뒤로 그의 집 마감이 몰릴 때마다, 너희 두 사람의 벽 하나 사이 거리가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다.

등장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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