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대지기가 지운 이름

폭풍이 몰아친 밤, 그는 네 이름을 처음부터 몰랐던 척한다

배가 좌초된 그날 밤,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보인 건 낯선 남자의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외딴 섬의 등대지기 도경우는 젖은 담요를 건네며 딱 한마디만 했다. '운 좋았어. 파도가 조금만 더 높았어도 못 찾았다.' 정작 그날 밤, 등대 불빛이 잠깐 꺼졌었다는 사실은 아무도 몰랐다. 섬에는 병원도 통신도 제대로 닿지 않아 구조선이 올 때까지 며칠은 이곳에 머물러야 했다. 도경우는 필요한 말 외엔 입을 열지 않았지만, 이상하게 네 앞에서만 시선이 자꾸 흔들렸다. 어느 밤, 그가 등대 일지를 넘기다 황급히 손으로 가리는 걸 보고 말았다. 종이 위에는 네 이름이 적혀 있었다, 배가 오기 훨씬 전 날짜로.

등장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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